네 개의 무대, 하나의 삶

가정에서의 실천가

  • 네 개의 무대, 하나의 삶
  • 가정에서의 실천가

가정 속 실천가 정희경

“가장 가까운 사랑,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정희경 선생의 실천은 가정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2남 2녀의 차녀로서 아픈 어머니를 대신하여 일찍부터 가족을 돌보아야 했고, 전쟁 통에 가족을
이끌며 생존과 교 육을 함께 책임졌습니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삶의 훈련장'으로서의 가정을 각인시켰습니다.

결혼 후 두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녀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가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시험 성적보다는 인격과 자율성을 강조했고, 자녀들과 매일 밤 시를 읽고 기도하 며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외국 유학을 결심한 딸에게 자신의 외투를 팔아 항공권
을 마련해주었던 일화는 헌신과 신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남편인 이연호 선생의 잇따른 사업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그리고 남편이 간경변으로 사망신고를 받고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사랑과 믿음으로 묵묵
히 지지하며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며 인내와 책임감 강한 아내의 역할을 다였습니다.

오랜 세월 병환을 앓던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그녀는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고백을 남깁니다. 간병은 단순한 돌봄이 아닌, 영혼의 훈련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기록은 일기, 사진, 가족 편지 등으로 남아 있으며, 그녀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기 희생을 실천했는지 보여줍니다.
손주 세대와도 깊이 소통했던 그녀는, 어린이들과 ‘지혜편지 교환’을 하며 정서 교육을 실천했고, 가족 식탁에서는 ‘오늘의 감사’를 나누며 일상의 성찰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정 안에서의 이 같은 실천은 단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적 윤리와 사회적 가치를 훈련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녀는 “가정은 사랑을 훈련하는 첫 번째 공동체”라며, 가정 교육이 곧 인류교육의 시작임을 강조했습니다.

정희경 선생의 삶을 구성하는 네 개의 무대 중, 가정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을 가진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시련과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은 삶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실망한다는 일이 의식적으로 금지되어 왔고 또한 쉽사리 실망하지도 않는 고마운 습성이 붙어 있다. 실망하지 않는 것은 내일을 살아야 하는 각오를 날 마다 새롭게 해주어서 고맙고, 모든 일에 크게 흥분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며 생활이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은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습성을 가지도록 격려해준 어머니, 몇 분의 스승을 이 시간 생각하며 한 편 이러한 습성이 길러지게 운수 좋게 전개되었던 나의 환경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마 나 같이 생에 대해서 집착하는 사람도 드문 모양이다. 그러기에 어떤 일을 당해도 묘하게 꼭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지나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크게 실망해서 주저앉는다는것은 내 보기에 겸손이 아니라 자학으로 보인다. 내 삶을 실망하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 때 다시 내 자신이 되어 질서 있게 돌아가는 나의 세계에 머물게 되고 그래서 자학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 삶이 된다고 믿으며 산다.

- 출처: 여학생, 69년 7월호 수록 글

노력하며 값있는 삶을 꿈꾸는 자존감 있는 삶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뜻을 바로 세우고 그 뜻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힘쓰면서 살아가노라면 그 뜻이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자기 인생의 방향과 목적과, 그리고 값어치에 대하여 자기만이 책임지고 가다듬어 나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런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나는 자존심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아무에게도 전가할 수 없는 책임과, 양보할 수도 없는 값어치를 마음의 심지로 삼는 그런 힘, 그것이 자존심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앞에 정하여진 시한이 그 얼마이든 간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매일의 이별을 새롭게 음미할 노력을 할 것이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한이 다 하는 날 가슴속에서부터 애곡할 것이다. 그것은 매일 같이 창조적 긴장 속에 나를 떠맡기는 기쁨이 그런 감사 속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이며 너와 내가 이 세상에 깃들여 더불어 애쓰며 무엇인지 이룩해 보겠다고 노력한 일이 그로써 값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여성중앙 72년 5월호 수록 글

푸짐한 일꾼으로서의 삶

어쩌면 강박적이라 할 정도로 일을 쫓고 일에 쫓기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그것이 노동이든 정신적 작업이든 심지어 감정의 작동이든 간에 매우 바쁘게, 굳이 나에 대한 자찬을 하자면 푸짐하게 일을 해내야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자연히 손마디는 볼그러지고 손의 테마디는 험상궂어지게 마련이다. 원래 태깔 좋은 손을 타고 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손을 아끼며 꾀스럽게 막일을 피하려 했던 소녀시절, “ 손은 무엇을 만들기 위해 쓰라고 있는 것이지, 구경시키려고 있는 게 아니다” 시던 말씀에 걸려서, 결국은 쓰는 손을 내 손으로 알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 출처: 수필집 더불어 산다는 것은(1987). 『일과 놀이의 함수』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삶 ‘진리를 알아야 자유로워져요’

마지막으로 굉장히 어려운 것을 제가 부탁을 하는데, 아이들이 믿음이 있어야 되겠어요.
그것을 제 경우는 신앙심이라고 봤는데, 천주교도 좋고 불교도 좋고 어떤 종교를 가지는 것은 상당히 인생을 사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달으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있죠. 진리를 알아야 사람이 자유로워져요. 그 사고가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자유로워집니다.

-출처: 2013년 10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직원 특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