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 정희경
“정치는 신앙의 확장입니다.정의를 향한 실천입니다.”
정희경 선생은 정치에 대해선 문외한이라고 평했습니다.
선생의 집안이 대대로 정치적 풍파에 견뎌온 이력은 바로 조선 후기 세도정치가 판을 치던 시대에 큰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정진한 가통이 이어져 내려온
연유입니다. 선생의 정치적 여정은 1971년 남북 적십자회담에 유일한 여성 대표로 참여로 시작되어 국내 정치계에 주목을 받았으며 후일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되며 정치에 발을 들입니다. 당시 그녀는 본업인 학교 교육과 여성운동 외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의정활동을 통 해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설득에 정치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새로운 실천의 장을 열게 됩니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 청소년지도위원 자격으로 남북적십자회담에 참여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인도적 교류를 위한 논의에서, 그녀는 상대 북측
대표단에게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가족을 찾고자 한다”는 인간적 호소를 남깁니다. 이 회담은 공식 외교를 넘어 민간 차원의 평화 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정치적 철학 ‘인간 중심, 신념 기반, 진심으로 임하는 실천’을 대변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됩니다.
1995년, 정희경 선생은 김대중 총재의 창당준비위에 참여하며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여성 몫으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공식 정치 무대에 복귀합니다.
교육과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입법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여성과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안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말보다는 실천이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현장 중심의 정치를 지향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 개선에 헌신했습니다. 당시 정희경 의원은 “정치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국여성연합회, 여성정치포럼, 시민사회협의회 등 다양한 조직에서 활동하며, 정치 제도 밖에서도 공공성을 실현하려 애썼습니다.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청소년 정치 교육, 노인 일자리 창출, 여성의 공적 리더십 육성 등은 그녀의 주요 과업이었습니다.
정치인 정희경은 권력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책임지는 삶'으로서의 정치를 구현한 인물이었습니다.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공헌했다는 긍지와 함께 정치가
국난극복과 국태민안의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며 책임 있는 정치인이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녀에겐 정치는 ‘주식’이 아닌 ‘좋은 간식’이자 세상을 넓게 보는 값비싼 새로운 경험 있었 습니다.
그녀는 퇴임 후에도 “정치는 내 생애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며, 일상 속 정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