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자 정희경
“교육은 해방입니다.가르침은 곧 생명을 키우는 일입니다.”
정희경 선생의 삶에서 교육은 하나의 천직이었습니다. 1932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한 그녀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배움’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믿음을 키웠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중에도 소외된 여성과 어린이 교육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고, 미국 유학을 통해
국제적인 교육 이론과 실천을 접하게 됩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이화여자고등학교 최연소 교장을 맡아, 여성 교육의 토대를 다지는 데 힘썼습니다.
단순 암기가 아닌 비판적 사고, 토론 중심 수업, 예술과 과학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 교육을 통해, 여성 교육을 새롭게 재구성하였습니다.
이후 현대고등학교에서도 민주적 학풍을 강조하며 교사 자율성 강화, 학생 참여 수업을 제도화하는 등 당대 교육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1990년대 초 설립자 이연호 선생과 함께 그녀는 평생의 교육 철학을 실현할 새로운 터전을 구상하게 됩니다.
“문화는 곧 미래다”라는 철학 아래, 문화산업 인재를 키우는 새로운 교육기관 설립에 착수했고, 그 결과 1996년 청강문화산업대학이 개교합니다.
초기 캠퍼스는 자갈밭이었지만, 교직원·학생들과 함께 직접 나무를 심고 건물을 짓는 등 ‘공동체로서의 학교’를 만들어갔습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 공연 등 국내 최초의 문화콘텐츠 특성화 대학으로 주목받았고, 산업 현장과 밀접한 커리큘럼, 프로젝트 기반
수업 등은 후속 전문대 설립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감성과 책임감은 함께 살아야 자란다”고 말하며, 인성과 공동체성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이 모든 교육적 실천의 바탕에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설립자인 남편 청강 이연호 선생과의 동행이 있었습니다. 정희경 선생은 남편과 함께 교육 철학을 기획하며,
나무를 옮겨 심고,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으며 ‘사람을 키우는 공동체’라는 이상을 실현했습니다.
“우리는 부부이자 동지였습니다.
교육은 함께 짓는 성소였습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두 사람은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삶을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깁니다. “이 땅에 정직한 사람, 따뜻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자라나도록 우리는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교육자 정희경은 단지 학교를 운영한 이가 아니라, 시대를 가로지르는 교육의 비전을 제시한 창조적 실천가였습니다.
그녀는 교육이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임을 자신의 생애 전체로 증명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