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무대, 하나의 삶

종교/사회 현장의 실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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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회인 정희경

“신앙은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정희경 선생은 기독교 신앙을 삶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신앙은 그녀에게 단지 종교적 위안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랑과 정의의 힘이었습니다. 1952년 강원룡 목사를 만나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기독학
생운동과 계몽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독교사상연구회에서 개혁적 젊은 청년들과 교류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종교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한편 현재 정희경 선생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섬김으로 다스림의 삶을 실천하며 모두 다함께 잘 사는 것을 최대의 관심사로 삼았습니다.
물질이든 재능이든 배운 지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쓰일 때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삶이었습니다.

1994년 대한YWCA 연합회에서 실행위원, 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실천하는 여성 신앙인’의 롤모델이 됩니다.
또한, 그녀는 여성의 전화 이사장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 보호시설 설치, 청소년 성교육 확대, 미혼모 자립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종교가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교회당이 아닌, 쉼터와 골목길과 상담실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복지법인 밥퍼, 다일공동체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장애인 선교, 노숙인 지원, 지역 사회 복지 네트워크 형성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말년에는 장애인
자립공동체 설립을 지원하고 수도자 및 평신도 지도자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안에 계신다”는 믿음을 평생 실천하며, 한 명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완성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신앙과 시민사회’, ‘여성과 기독교’, ‘교육과 영성’ 등을 주제로 한 수많은 강연을 통해 신앙과 사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기도 후 발로 걸어야 진짜 믿음”이라며, 믿음이 곧 책임이고 헌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희경 선생은 종교사회인으로서, ‘신앙은 삶의 중심이며, 사회적 실천의 에너지’임을 몸소 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눔의 삶

원래 너나 할 것 없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고기 굽는 냄새만 풍겨선 안 된다고, 동네 어른 들게 한두 점의 고기라도 나누어 드릴 처지가 못 되면 아예 고기 굽는 냄새도 풍겨서는 안 된다고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 출처: 수필집 더불어 산다는 것은(1987). 『더불어 산다는 것은』에서

십자가 목걸이의 격려

내가 고교 교장직을 떠나던 날이다. 이임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학교 교정 길목에서 허술한 차림의 한 학생이“ 선생님 이걸 꼭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생님 떠나신다기에 오래 생각했어요. 이건 선생님의 살아가시는 모습과도 비슷하니까요” 하고 내 목에 목걸이 하나를 걸어주었다. 투박한 십자가가 달린 스테인레스 목걸이었다. 나는 제자에게서 받은 이 선물을 통하여 교훈을 얻었다.

십자기 지기를 꺼려하고 수고하기를 회피하려는 어른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수고할 것을 상징적으로 일러준 그 정성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지금도 그 투박한 십자가 목걸이는 나의 침실 머리맡에 걸려 있어 때로 나는 뜻하지 않은 격려를 받곤 한다.

- 출처: 수필집 더불어 산다는 것은(1984). 『십자가 목걸이』에서